[서론]

  19세기 초반 유기화학이 확립된 이후, 탄소 기반의 화합물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행되었다. 21세기 들어 급격한 기술과 공학의 발전으로 나노 기술이 발전하였고, 유기화학과 나노 기술의 만남은 다양한 탄소 나노물질들의 개발을 이끌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탄소동소체 흑연을 사용하여 또 다른 값비싼 탄소동소체인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보려던 시도들은 재미있게도 고온, 고압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발견들에 힘입어 1980년대에 화학자 리처드 스몰리와 로버트 컬, 해럴드 크로토는 60개의 탄소가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된 ‘풀러렌’이라는 새로운 탄소 나노물질을 최초로 발견하고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후 1990년대 탄소나노튜브의 개발, 2000년대 초반 그래핀의 분리방법 개발 등을 통해 탄소 나노물질 분야는 크게 성장하고 있다.
  분류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나 일반적으로 1-100 nm 사이의 크기를 가지면 나노 물질로 분류한다. 물질이 나노 크기로 작아지면 본래의 물리, 화학, 전기적 특성이 크게 변하여 원래 물질에는 없었던 뛰어난 특성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활용하여 신개념 반도체, 광전자 공학, 촉매, 센서 등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다. 또한, 탄소 나노물질은 유전자 전달체, 바이오 센서, 세포 이미징, 항암치료, 조직공학용 합성 지지체 등으로 바이오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탄소 나노물질을 약물로 사용하고자, 풀러렌과 탄소나노튜브의 빈 내부 공간에 약물 분자를 넣어 약물전달시스템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최근에는 나노물질 합성을 전문으로 하는 화학자들과 질병을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협업으로 탄소 기반 나노물질들을 다양한 적응증의 신규 치료제로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

[탄소 기반 나노물질의 바이오 활용]

  최신 퇴행성 뇌질환 연구들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 또는 타우, 파킨슨병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알파시누클린, 헌팅턴병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헌팅틴, 그리고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퍼스나 TDP-43 등이 각각의 질환이 유발될 때 일어나는 세포 환경의 변화로 단량체에서 응집체로 바뀌고 질병을 악화시킨다는 가설(단백질 응집 가설)이 대두되었다. 세포내에서 정상적인 역할을 하던 신경단백질의 단량체들이 퇴행성 뇌질환의 유발과 함께 비정상적인 구조로 변형되어 내부에 베타병풍 구조(beta-sheet structure)라는 단백질의 2차 구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구조로 바뀐 단량체들은 베타병풍 구조 사이에서 서로 강력한 소수성 결합을 이루며 섬유구조로 바뀌게 되고, 세포 내부 또는 외부에 쌓여 신경세포를 죽이고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한다 [1].
  현재 비정상적 결합을 이루는 신경단백질의 응집 억제를 타겟으로 하는 많은 약물들이 개발 중이다. 원인 단백질의 발현을 줄이는 방법도 좋은 접근법이나, 퇴행성 뇌질환의 경우 어느정도 질병이 진행되고 증상이 나온 후 내원하는 경우가 많아 다수의 약물은 이미 응집체 형성이 진행 중이거나 응집체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를 가정하여 개발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을 타겟으로 하는 약물을 예로 들면, 베타병풍 구조를 저해하는 beta-sheet breaker peptide를 사용하여 full length 베타 아밀로이드가 응집체로 형성되는 것을 억제하는 약물과 heparin, RNA, 또는 arachidonic acid 등을 사용하여 타우 응집체 형성을 억제하는 약물 등이 보고되었다 [2].
   흥미롭게도 위에 나열했던 풀러렌, 탄소나노튜브, 그래핀 같은 일련의 탄소 나노물질들이 퇴행성 질환의 원인 신경단백질들인 아밀로이드 베타, 타우, 알파시누클린 등의 응집체 형성을 저해하는 효과를 보인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어 새로운 개념의 나노약물 치료제로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탄소 나노물질들은, 구조를 이루는 탄소 원자들이 각각 주위의 다른 탄소 원자 3개와 공유 결합을 이루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어 아주 강한 소수성 효과를 보이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소수성 효과를 기반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에 대한 응집 저해 현상을 풀러렌 [3], 탄소나노튜브 [4], 그래핀 [5] 을 사용하여 확인하였고, 파킨슨병의 원인 신경단백질인 알파시누클린에 대한 응집 저해 현상도 풀러렌 [6], 탄소나노튜브 [7], 그래핀 [8] 에서 확인 되었다. 이러한 신경단백질 응집 저해 현상은 탄소 나노물질의 일부 작용기의 변경으로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다. 아직 정확한 작용 기전을 알 수는 없으나, AFM, TEM 등을 사용한 이미징 결과나 Molecular dynamics를 사용한 분자 동역학 결과 등으로 예상컨대, 탄소 나노물질들이 비정상적인 구조를 갖는 신경단백질 단량체에 바로 소수성 결합을 형성하거나, 각 단량체가 베타병풍 구조를 갖게 되는 단계에 친소수성 특성을 사용하여 탄소 나노물질이 베타병풍구조 사이에 끼어 들어 섬유구조의 형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사한 연구가 다른 퇴행성뇌질환의 신경단백질인 헌팅틴과 TDP-43, 타우 등을 대상으로 많은 연구 그룹에서 수행되고 있다.

[결론]

  탄소 기반의 나노약물을 임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미리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최신의 기술이다 보니 아직 신약 개발을 위한 규제 당국의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 또한 탄소 나노물질을 이용한 많은 연구들이 적응증에 집중되어 있어, 각 물질에 대한 독성 시험 및 약물 분포/대사 등에 대한 약물 개발을 위한 연구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아직 개발의 초기 단계이고 여러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미래에 탄소기반 나노 약물이 퇴행성 뇌질환의 진단 및 치료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미국과 중국에 뒤쳐지지 않도록 국내에서도 많은 투자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 1.

  Eisele, Y.S., et al., Targeting protein aggregation for the treatment of degenerative diseases. Nat Rev Drug Discov, 2015. 14(11): p. 759-80.

• 2.

  Panza, F., et al., A critical appraisal of amyloid-beta-targeting therapies for Alzheimer disease. Nat Rev Neurol, 2019. 15(2): p. 73-88.

• 3.

  Kim, J.E. and M. Lee, Fullerene inhibits beta-amyloid peptide aggregation. Biochem Biophys Res Commun, 2003. 303(2): p. 576-9.

• 4.

  Fu, Z., et al., Induced beta-barrel formation of the Alzheimer's Abeta25-35 oligomers on carbon nanotube surfaces: implication for amyloid fibril inhibition. Biophys J, 2009. 97(6): p. 1795-803.

• 5.

  Li, M., et al., Using graphene oxide high near-infrared absorbance for photothermal treatment of Alzheimer's disease. Adv Mater, 2012. 24(13): p. 1722-8.

• 6.

  Sun, Y., et al., Amphiphilic surface chemistry of fullerenols is necessary for inhibiting the amyloid aggregation of alpha-synuclein NACore. Nanoscale, 2019. 11(24): p. 11933-11945.

• 7.

  Alimohammadi, E., et al., Potential treatment of Parkinson's disease using new-generation carbon nanotubes: a biomolecular in silico study. Nanomedicine (Lond), 2021. 16(3): p. 189-204.

• 8.

  Kim, D., et al., Graphene quantum dots prevent alpha-synucleinopathy in Parkinson's disease. Nat Nanotechnol, 2018. 13(9): p. 812-818.

저자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