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회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다른 때와는 사뭇 달랐다. 2023 뉴스지 편집위원장을 맡아 마지막 임무로 동계 학술대회 후기를 작성하기로 했기 때문에, 강의도 열심히 들어야 할 뿐 아니라, 기자의 눈으로 학회의 뒷이야기도 써 내려가야 한다. 이번 학회는 설 연휴와 붙어있어 다른 사람에게 글쓰기를 부탁할 수 없었기에 내가 나서긴 했지만,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맡은 일이기에 부담을 내려놓고 담백하게 2박 3일간의 여정을 써 보려고 한다.

   2024년 2월 5일 아침, 서울엔 비가 오고 있었다. 용평에는 눈이 오면 좋겠다는 기대를 맘속에 품고 버스에 탑승했다. 연구 계획서를 쓰느라 피곤했는 데다 무사히 접수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어서인지 잠시 눈을 붙였는데, 잠이들어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 곧 학회장에서 만나게 될 반가운 교수님들과 유익한 강연들을 기대하니 심장이 두근거린다. 즐거움도 잠시,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거북이걸음을 한다. 눈이 갑자기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가 눈에 덮여서 앞선 차들중에 접촉 사고가 난 것같다. 심장이 더 빨리 뛴다. 이러다 늦으면 어쩌지? 걱정도 잠시, 버스는 유유히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용평으로 향한다.

   늦지 않게 무사히 학회장에 도착하여 등록하고, 늘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는 우리 사무국 직원들과 반가운 인사까지 마쳤다. 드디어 송재환 교수님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제35회 동계학술대회의 막이 올랐다. 최도일 회장님의 간략히 압축된 축사 뒤에, 올해는 특별히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의 김장성 원장님의 축사가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업이 등장하고 있으며, 특히 생공연은 바이오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융복합 기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기존의 한계를 넘어 더욱 도약할 수 있는 바이오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는데, 앞으로 우리나라 과학이 갈 방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큰 박수를 보냈다.

   이번 학회는 Keynote Lecture로 문을 열었는데, 이원재 교수님의 microbiome에 관한 유익한 강의였다. 요즘도 매년 기아로 500만명 이상 사망하고, 죽지 않더라도 stunting으로 평생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대부분 참석자가 놀라워했고, 강의에 더욱 집중하는 뜨거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기아를 해결하는 것이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전 세계가 식량 원조에 힘을 쏟았으나 이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나쁜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에 소화, 흡수가 안 되니 아무리 잘 먹이더라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임하여 큰 성과를 내는 교수님께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노력을 통해 앞으로 이 지구상에 기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길 기대한다.

   다음 세션은 Rose Lecture인데, 연구의 성숙도가 무르익은 과학자들의 강연이다. 지승욱(생공연) 박사님의 Nanopore biosensing technology, 이현숙 교수님(서울대)의 BRCA2, 구승회 교수님(고려대)의 cAMP signaling pathway에 관한 한우물파기 연구는 참석한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명강연이었다. 뜨거운 분위기를 잠시 식히기 위한 휴식 시간, 강의를 집중해 듣느라 보지 못했던 강연장의 뒷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학회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것은 사람의 노력으로 할 수 있지만, 이런 아름다운 배경을 연출할 수는 없다. 열심히 학회에 참석하려고 먼 길 달려온 우리들의 마음이 하늘에 전달된 듯, 너무나 아름다운 설경을 잠시 넋을 내려놓고 감상해 본다.

   올해는 전임 학회장님의 평생 연구 여정을 들을 수 있는 President Emeritus Lecture가 두 개나 있었다. 먼저 서영준 교수님(서울대)께서 평소엔 들을 수 없는 교수님의 삶을 나눠주셨다. 생물과 화학을 하고 싶었는데,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생화학이라는 학문을 발견하여 긴 시간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할 때, 교수님의 목소리가 잠시 떨리는 것 같았다. “Rat의 간효소에 의한 생강의 매운 성분 shogaol의 대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미국 위스콘신 대학의 유학 시절과 96년부터 서울약대 교수 재직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발암물질의 대사에 관한 연구에 대해 걸어온 길을 후배들에게 담담하게 말씀해 주셨다. 마지막 슬라이드를 통해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 단계 한 단계 사다리를 올라갔었고 그렇게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나도 저렇게 저 자리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교수님에 대한 존경과 앞으로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저녁 만찬에서 서울대 성제경, 예상규 교수님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첫날 밤의 대미를 장식할 조진원 교수님(연세대)의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콘서트의 타이틀인 ‘The New Beginnings’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교수님의 각오와 기대를 담은 듯하였다. 같은 뜻의 한자성어인 ‘종이부시’(어떠한 일을 마치고 다음 일을 잇달아 시작함)을 작년에 신곡으로 발표하셨는데, 콘서트의 첫 곡으로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의 열기가 점점 달궈지다 가수 ‘리하‘가 등장하자 절정에 이르렀다. 리보좀의 ’리’ 하프로이드의 ‘하‘라고 자신을 소개했는데, 청중에 대한 좋은 매너와 감미로운 목소리, 무엇보다 조진원 교수님과의 아름다운 화음이 콘서트장을 꽉 채운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했다. 79년 발표하신 히트곡 ‘연’을 열창하시고 뜨거운 앵콜 요청에 애창곡으로 화답함으로써 첫날 공식 일정이 모두 끝났다.

   둘째 날 오전은 학생들이 고대하는 자유시간이 있었다. 스키를 즐기는 학생도 있고, 하얗게 눈이 쌓인 발왕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식히는 학생들도 보였다. 전날 눈이 많이 와서 용평 슬로프의 상태는 최상이었고, 나도 슬로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연구 계획서를 작성하며 쌓였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다.

   오후에는 Blue Ribbon Lecture가 있었다. 이유정(서울대), 우재성(고려대), 노재석(연세대), 오경진(생공연) 박사의 훌륭한 강의와 뛰어난 연구업적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노재석 교수의 최신 연구결과는 우리 실험실에서 발견한 암줄기세포의 생존 기전과 유사하여 공동연구를 추진해 보려고 한다.

   이번 학회의 둘째 날 대미를 장식할 Gold Ribbon Lecture의 주인공은 이한웅(연세대) 교수님이다. 이한웅 교수님은 박상철(서울대) 전임 회장님과 함께 KSMCB 동계학회의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하신 분이라 생각한다. 2005년 Gold Ribbon Lecture를 처음 만들었고, Blue Ribbon Lecture도 함께 만들면서 신구의 조화/현재와 미래를 공존하게 한 장본인이라는 것을 이 강연을 통해 알게 되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마우스 모델을 만들어 다양한 유전자의 생체 내 기능과 기전을 증명하셨기에, 우리나라를 생명공학 선진국으로 이끈 큰 산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강연 중에 여러 가지 명언을 인용하셨는데,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만일 사람이 목숨을 걸만한 어떤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삶을 살 자격이 없다“는 말이 내 마음을 향해 다가왔고, 무엇보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말씀은 나를 비롯한 청중들에게 큰 충격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의 앞날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린다.

   이번 학회에서 세션이 끝남과 동시에 사회자들이 꼭 하는 멘트가 있었다. 마치 유튜버들이 ”구독과 좋아요는 사랑입니다.“라고 하듯이 우리 학회지인 ”Molecules and Cells에 투고와 인용은 사랑입니다.”라며 학회지 사랑을 강조하였다. 이번 기회에 학회지를 꼭 인용해야겠다는 강한 다짐을 해 본다.

   마지막 밤은 역시 ‘네트워킹‘을 통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이다. 이번 학회는 2000년대 학번부터 70년대 학번에 이르기까지 참석한 모든 교수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공동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마침 자정부터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이 요르단과 아시안컵 경기가 있어서 네트워킹의 시간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다. 비록 졌지만, 승부와 상관없이 모두 하나 되어 응원하고 다양한 얘기를 나눴던 그 밤은 내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마지막 셋째 날, 중견/신진이 어우러진 Green, Red Lecture를 끝으로 가을 학회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3일간의 환상적인 학회는 막을 내렸다. 이것으로 나의 2024 KSMCB Winter Conference의 긴 여정도 끝이 났다.